《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전시 후기 / 호암미술관 전시

<밀실(검은 날들)>, 2006

💬 의도치 않게 관람하게 된 전시,《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원래는 호암카페를 방문하려 한 것이었는데, 알고보니 카페가 미술관 안에 있어 입장권을 끊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계획에 없던 미술관 방문이었지만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

⬇️ 카페 후기, 주차 등 다른 정보는 아래에 글을 따로 써두었으니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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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정보

🗓️ 전시기간
– 2025.08.30 (토) ~ 2026.01.04 (일)
– 휴관일: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음력 설날 및 추석 당일

⏰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 매표 마감시간 오후 5시

💳 이용요금
– 1인 25,000원

📍장소
–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562번길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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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차
– 유료 주차장 운영 (30분 당 1,500원, 하루 최대 15,000원, 앱에서 사전 정산할 경우 12,000원)

📢 정규투어(도슨트) 시간
– 기간: 2025.12.02 (화) ~ 2026.01.02 (금)
– 시간 및 장소: 오후 2시, 4시 / 미술관 1층 로비

🔗 전시 안내 URL
호암미술관 루이즈 브루주아: 덧없고 영원한
호암미술관 홈페이지

💁🏻‍♀️ 관람 Tip
– 플레이스토어, 앱스토어에서 “큐피커” 앱을 설치한 후 “호암미술관” 또는 “전시명”으로 검색하면 무료로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가능
– 개인 이어폰 지참 및 방문 전에 미리 다운로드 받으면 끊김 없이 들을 수 있음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호암미술관은 현대미술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의 대규모 회고전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25년 만에 열리는 부르주아의 미술관 개인전으로, 작가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 110여 점을 망라하며, 그의 예술 세계를 구성하는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구조를 조명합니다.

부르주아는 유년기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출발점으로, 인간 내면의 감정과 욕망을 조각, 회화,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탐구해왔습니다. 전시는 1940년대의 초기 회화와 〈인물(Personages)〉 군상에서부터 대형 〈밀실(Cells)〉 연작과 후기 섬유 작업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에 걸친 작품 세계를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구성 속에 풀어냅니다.

전시 제목은 작가의 자필 노트에서 발췌한 문구로, 유기적 형태와 기하학적 구조, 남성과 여성, 추상과 구상 등 부르주아의 작업 전반에 흐르는 상반된 개념들 사이의 긴장과 균형을 암시합니다.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은 동시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부르주아의 예술 세계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__ 출처: 호암미술관 홈페이지

미술관 내부에 <웅크린 거미> 라는 작품이 있는데,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도 그 작품으로 보이는 조형물이 있었다.

사물함도 있으니, 겉옷이나 가방 등 보관할 물품이 있다면 이용하기 좋을 듯 하다.

<커플>, 2003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커플>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전시가 펼쳐진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커플’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재료와 크기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 <커플>은 사랑하는 존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표현하고 있다. 한 가닥의 와이어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인물들은 위태롭고 모순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많은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나선은 부르주아에게 중요한 상징이다.

전시는 두 층으로 구성되며 밝은 아래층은 질서와 의식의 세계를, 어두운 위층은 감정과 무의식의 세계를 상징한다. 상반된 두 공간은 서로 대립하는 힘의 긴장을 보여주며, 이는 부르주아 작업 전반을 규정짓는 특징이기도 하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되풀이되는 괴로운 기억과 불안감을 조각을 만들며 몰아내고자 했다고 한다. 사랑, 두려움, 버려짐은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업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주제이다.

이번 전시《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는 작은 드로잉부터 대형 설치작업까지 작가의 긴 생애를 아우르는 작품 11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의 중심에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감정적 유산과 평생 씨름해 온 예술가의 내적 투쟁이 자리한다. 많은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커플, 어머니와 아이, 나선과 같은 모티프는 내면의 갈등과 긴장, 화해를 시각화한다.

우측 <가족>, 2007

“말년에 부르주아는 가족과 출산, 모자 관계, 꽃을 주제로 한 붉은 계열의 과슈 드로잉 연작을 여러 차례 제작했다.
그는 물에 적신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일부러 물감이 번지거나 흐려지도록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얼룩이나 물방울 자국을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빨강은 피와 고통, 신처를 뜻했지만, 동시에 강렬한 감정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했다. 다섯 송이의 꽃은 두 개의 가족, 즉 그가 태어나 자란 집안과 남편 로버트 골드워터와 함께 꾸린 가족을 상징한다.”

<무제>, 2000

“2000년에 부르주아는 1950년대의 <인물> 조각을 다시 떠올리며 새로운 연작을 시작했다. 작가는 이를 ‘진행’이라 불렀다. 이전에는 나무나 석고를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일상 속 천(옷감, 침구, 수건, 태피스트리, 가구용 천)으로 만든 블록들을 중신 기둥에 쌓아 올렸다. 각각의 블록은 위로 가면서 커지거나 작아지며, 반복적이면서도 변화하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브루주아에게 기하학적 반복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스리고 질서를 되찾는 수단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하학에는 일관된 규칙이 있다. 기하학은 확실하다 이는 내가 살아가는 감정의 세계와 정반대다’ 직물로 쌓아 올린 기둥은 부드럽고 친밀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유연하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회복력을 보여준다.”

<웅크린 거미>, 2003

“부르주아에게 거미는 어머니를 상징했다. 가정을 지키는 보호자이자, 능숙한 태피스트리 복원가였던 어머니를 닮은 거미는 그의 작업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소중하면서도 복잡한 모티프이다. 그렇다면 이 거미는 다정한 수호자일까, 아니면 무서운 포식자일까?
부르주아는 모든 현상, 심지어 모성까지도 서로 대립하는 힘을 풀고 있다고 보았다. 어머니는 다정하고 헌신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두려움이나 불안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의 거미 조각들은 이러한 이중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보호를 상징하는 형상이 동시에 위협과 억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 작품 속 거미의 불안한 존재감은 모성이라는 경험의 모순을 강렬하게 환기한다.”

<아버지의 파괴>, 1974

“1974년 제작된 <아버지의 파괴>는 부르주아의 첫 설치 작품이자 가장 극적인 작업 중 하나이다. 무대처럼 정면만 열린 구성, 강렬한 붉은 조명,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방식은 마치 누군가의 내면 속 심리극장을 목격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안쪽에는 다양한 유기적 형태들이 모여 있는데, 일부는 닭다리나 양의 숄더랙 같은 실제 고기를 본떠 만든 것이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이 장면은 가부장이 권위를 내세우며 장광설을 펼치는 저녁 식탁에서 펼쳐진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말리려 애쓰지만 소용이 없고, 내내 침묵 속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어느 날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다. 결국 아이들은 아버지를 붙잡아 식탁 위에 눕히고, 토막 내어 삼켜 버린다. 이 작품은 가부장적 권력이 만들어내는 숨 막히는 억압을 드러낸다. 부르주아는 답답한 저녁 식사 장면을 어둡고 코믹하며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반란의 장면으로 바꿔 놓았다.”


미술 작품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작가의 삶을 알게 되는 순간, 작품에 담긴 의도와 감정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가를 이해하게 되면 작품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더라도 도슨트나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시간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과 감정을 거쳐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켰는지 알게 될 때, 하나의 작품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형태로 탄생했는지가 자연스럽게 와닿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루이즈 부르주아는 내게 생소한 작가였음에도 그 작품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작업은 삶과 감정, 기억이 어떻게 예술의 형태로 남을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삶을 예술로 옮겨 담는 방식에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업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개인적이고, 솔직하다. 그녀의 작품을 마주하면 ‘작가를 안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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